2018년에 다녀온 남미 배낭 여행을 사진과 함께 기록해볼까 합니다. 코로나 이전이고,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혼자 남미 배낭 여행을 계획하시거나 남미에서 정보가 필요하실 때 가볍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 '이것은 꼭 주의해야한다.' 같은 요소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만약 혼자 배낭여행은 가고 싶지만 어디 갈지 계획하지 못하신 분들은 읽지 마셔요. 남미로 떠나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워낙 많은 곳을 다녔기에 여행기와 국어 문법이 양립할 수 있는 블로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다만 압도적으로 국어 문법의 방문자가 많네요. ㅋㅋㅋ 여행기는 개인의 만족인걸로
숙소에 도착한 다음 날. 피곤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엊저녁에 마신 술의 숙취가 잠깐 남았지만 힘들어할 새도 없습니다. 세면도구를 챙겨 도미토리의 욕실로 가니 형들이 주섬주섬 같이 나오고 계셔서 씻고 상쾌한 하루를 준비했습니다. (상쾌하지는 않고 힘든)
제가 갔던 6월달의 쿠스코는 초겨울 날씨였습니다. 이에 단단히 방한 준비를 하고, 숙소 앞으로 픽업을 온 여행사 픽업트럭에 몸을 맡긴 채 비니쿤카로 향했습니다. 버스 안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엄청 많이. 그리고 한국인 희재 무리만이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희뿌옇게 하늘이 밝아올 무렵. 차량은 어딘가 황무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고, 느낌이 딱 '제주도 수학여행의 단체 식당'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차 이 후 다들 간단한 아침을 여기서 해결하는 듯 했습니다. 나름의 조식 포함 서비스일겁니다.
간단한 아침을 해결 후, 차량은 다시 출발하여 비니쿤카로 향했습니다. 창밖은 이제 완연한 시골의 그것입니다. 시골이지만 우리나라의 시골이 아닌, kbs 해외 기행 다큐에 나올법한 장면들이 지나갑니다.
비니쿤카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비니쿤카 트래킹은 약 2~3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이지만 가장 큰 난관은 고도입니다. 3400m에 위치한 쿠스코에 있을 때에도 물속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었지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턱밑까지 숨이 차오릅니다. 트래킹 시작 지점에 가만히 서있어도 숨이 '할딱할딱' 쉬어지는 느낌입니다. 더욱이 높은 곳을 걸어서 올라가야한다니.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지금도 저는 낭만을 삶의 제 1 가치로 둡니다. 그 때의 희재는 더욱이 거부할 일이 없었습니다. 자신감 있게 걸어올라가기로 결정합니다.
'걸어올라가기로 결정했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니쿤카의 풍광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철광석이 노출되어 형형색색의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그 풍광도 풍광이지만 비니쿤카를 둘러싼 주변의 설산의 아름다움. 원래의 형식을 간직한 원주민들의 삶의 흔적, 천혜의 자연 등 볼거리가 매우 많습니다. 그렇기에 모두들 올라가고 싶어하지만 고도가 가로막고 있으니 사람들은 말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걸어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편도 50솔(17,000). 왕복 70솔(24,000)으로 기억합니다.
사나이 김희재는 앞서 말했듯 체력에 매우 자신이 있었습니다. 처음 일행들은 버스 안에서 다같이
"말을 타고 올라가는건 자존심에 안되겠다. 우리는 다같이 등정을 진짜로 하자'
라고 했지만
막상 비니쿤카 초입. 해발고도 4500m의 기압을 마주하니 누나 한 분, 형 두 분은 갑자기 없어지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가이드 한 분이 끌어주는 말에 올라탄 채로 나타나
"ㅋㅋ 이건 못걸어감 여러분도 말 타세요~"
하고 저 멀리 트레일로 점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저는 걸었습니다. 올라가는 풍경은 환상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연속에서 점이 되어버리는 그런 느낌을 아시나요? 내 주위를 둘러싼 풍광이 너무 압도적이라 말 그대로 둘러 쌓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산에서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과,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이끼들. 어지러울만큼 진한 피톤치드 냄새. '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법한 웅장한 설산의 위용. 걸으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중간까지는 말입니다.
실력이 없는 호기는 만용이고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허세입니다. 나 사나이 김희재가 이걸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형님들 두 분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어올라가는 것도 중턱 즈음. 형님 한 분은 뒤쳐지고 둘이서 걸어올라가다 희재도 멈춰버렸습니다. 어느정도였는지 비유를 하자면, 한 걸음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말 체력이 다하고 너무 힘들고 죽고싶어서. 전력질주를 마친 후에 탈진해버린. 그래서 한 걸음도 못 떼는 그런 느낌이 아닙니다.
'정말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라는 느낌의 힘듦이었습니다. 한 걸음을 떼고, 물병을 따서 물을 마시고, 팔을 들어 지팡이를 짚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행위의 과정들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마치 폐를 무언가가 2/3정도 짓누르고 있어 나머지로만 숨을 쉬는데 등산으로 인해 체력이 다하니 헐떡이는 숨은 원래의 1/20도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오롯이 하나의 만용만을 원망했습니다.
'진짜 말을 탔어야 하는데.'
과장이 아니라 10분도 넘게 뒤쳐진 외국인들이 희재를 앞서 올라가버리고, 희재는 그래도 꾸역꾸역 발걸음을 한 발씩 뗐습니다. 올라가다보니 설산의 풍광은 잠시 옆으로 비켜나고 무지개의 철광석들이 눈을 어지럽게 합니다. 비니쿤카의 무지개색은 산에 있는 철광색들이 공기를 만나 산화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색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예쁜 무지개색도 지금의 희재를 위로할 수는 없었습니다. 진짜 진짜 힘들었으니까요. 말 그대로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겨우 떼며 정상 부근에 다다르니
'희재야!'
하고 부르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말을 타고 먼저 올라갔던 일행들이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인의 따뜻함. 한국인의 정. 한국인의 사랑. 그제야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정상으로 바삐 올라가니 눈을 어지럽게 하는 형형의 색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쿨하게 말을 탔습니다. 체력이고 뭐고 아무것도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비니쿤카에서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경제학의 간단한 작동 원리가 역시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입니다. 앞서 적은 바와 같이 비니쿤카 말타기의 시세는 편도 50sol, 왕복 70sol 입니다. 워낙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지라 사람들은 왕복으로 말타고 다녀오기를 원하기보다는 편도는 걷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힘든 오르막길을 타고 올라가고, 걸어서 내려옵니다.
가이드분들의 경우 말을 타고 올라갔지만 그냥 내려오는 것보다는 제 값을 다 못받더라도 사람을 태워내려오는게 이득입니다. 그래서 정상을 찍고 내려올 때는 말타기 편도 비용이 매우 저렴해집니다. 50sol에서 10sol 까지도 내려갑니다. ㅋㅋ 희재 같은 경우에는 정말 말 그대로 힘에 부칠 때까지 걸어서 겨우겨우 정상에 올랐기에 도저히 내려갈 힘이 없었는데.. 마침 내려가는 말은 싸고.. 가이드 분이 권유하기에.. 그대로 말을 타고 내려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어요.
비니쿤카의 등정은 마쳤는데 이상하게 내려오는 길. 머리가 자꾸 아팠습니다. 말의 진동때문인가? 라고 느끼기에는 이상하게 지끈거리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코카 잎도 계속 씹고, 코카 사탕도 빨면서 내려왔음에도 머리가 지끈거려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이게 매우 큰일의 전초가 됩니다.
쿠스코 3편에서 이어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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