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다녀온 남미 배낭 여행을 사진과 함께 기록해볼까 합니다. 코로나 이전이고,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혼자 남미 배낭 여행을 계획하시거나 남미에서 정보가 필요하실 때 가볍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 '이것은 꼭 주의해야한다.' 같은 요소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만약 혼자 배낭여행은 가고 싶지만 어디 갈지 계획하지 못하신 분들은 읽지 마셔요. 남미로 떠나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요즈음 다른 일들에 정신이 팔려 블로그를 한동안 쓰지 않다가, 오늘 무심코 열어보았는데 꽤나 많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주고 계신걸 보았습니다. 나름 기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제가 좋아서 쓴 글들을 그래도 꾸준히 찾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근데 여행기보다는 국어 문법이 조회수가 더 높아요 분발하겠습니다.
제목이 공격적이라 많이 놀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저는 쿠스코에만 15일간 있었습니다.
'쿠스코가 그렇게 볼거리가 많아?'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추픽추, 비니쿤카 보고 나면 사실 볼 게 없습니다. 그 두 가지도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정서로 다니면 3일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쿠스코는 마추픽추 보기 위해 거쳐가는 그런 도시가 아닙니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해있습니다. 그 덕일까 리마처럼 밝고 화려한 도시의 모습이 아닌 거칠고, 투박한 잉카 문명의 모습이 구석구석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스페인 침략자들의 흔적과 함께 버무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쿠스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아. 희재는 어쩔 수 없이 쿠스코의 밤 가로등과 같은 전구색의 분위기에 취해버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동행들을 보내고, 떠나보내고, 먼저 보내고 2주 간 느긋하게 혼자 다녔습니다.
밤에는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같이 다음 지역으로 가자는걸 아쉬움 없이 보냅니다. 낮에는 혼자 걷다가 담배 하나 피며 오가는 모든 것을 눈에 담습니다. 쿠스코가 한 눈에 보이는 카페에 매일 같이 들러 창가에 앉아 와인을 홀짝거리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오면 다시 혼자 내려가 또 걷습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숙소에 누워 밤거리를 내다봅니다. 지대가 높아 언제나 맑기에 쿠스코의 밤하늘은 그 어느 때라도 깨끗한 보라색입니다. 기분이 더 좋은 날에는 광장으로 달려가 KFC 버켓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옵니다.
시간이 내 주위 풍경과 함께 멈춘 듯하면서도 생동감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영혼을 울리는 곳이라고 말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가본 도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도시였고,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 죽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대로 희재가 순탄하게 나이를 먹는다면 여기서 죽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오래 머물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쿠스코의 청량하고 싸-한 공기가 글을 쓰는 지금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쿠스코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나의 좁은 세상 속에서 쿠스코는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이카에서 덜컹거리며 버스를 약 42시간 정도 타고 왔습니다. 원래는 30시간 정도 소요되는 노선인데, 경험자들은. 그리고 많이 찾아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카 - 쿠스코 노선은 길도 매우 좁고, 험합니다. (버스 사고도 실제로 많이 일어납니다. 무섭죠) 그 당시 들었던 떠도는 괴담과 같은 소문들이 많았습니다. 버스 강도들이 버스를 세워서 조직적으로 한 무리는 짐을 털고, 한 무리는 승차해서 소지품을 전부 뺏어버린다는. 그래서 복대에 넣어도 안심할 수 없으니 엉덩이쪽에 여권이랑 달러를 넣고 자라는. 어쩔 수 없이 지대가 높은 도시로 향하는 노선이기에 길이 매우 좁아서 버스 전복, 혹은 낭떠러지로의 낙차 사고가 자주 일어나니 주의해야한다는 등의 소문이었습니다. (낭떠러지로 버스가 떨어지는걸 어떻게 주의해야하는지? )
자다 깨다 자다 깨다하며 계속 버스는 나아갑니다. 12시간 넘게 버스를 타니 잠에 들어도 머릿속에서는 담배 생각이 간절합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창밖으로 날이 밝아왔습니다.
날이 밝은 후 5시간 정도를 더 가니 쿠스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쿠스코 버스 정류장은 사진이 없습니다. 버스가 너무 지쳐서 그랬을까요? 어딜 가든지 사진부터 들이미는 희재가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앞선 글에서 쓴 바와 같이 국토종주도 혼자 걸어서 하고, 해병대 공정대대 출신으로 체력에는 항상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버스 42시간이 이겼습니다.
힘에 부쳐 버스 정류장 근처 카페에 들어가, 와이파이를 이용하며 급하게 쿠스코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이 숙소 예약은 남미 여행에서 최고의 선택 중 하나가 됩니다. 운이 정말 좋은 희재라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남은 기력으로 우버를 예약하고, 숙소 근처인 아르마스 광장에 내렸습니다. '아르마스 광장'이라는 이름은 페루의 각 도시 전역에 있습니다. 슬픈 역사이기는 하지만, 침략군인 스페인군이 페루 원주민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군대 사열을 하던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를 뒤로 하고, 지금의 쿠스코에서는 가장 활기찬 장소 중 하나입니다.
아르마스 광장에 내려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벌리며 다녔습니다. 도시의 모든 곳에 넘실대는 울긋불긋한 생명력이 아무런 관계없는 여행객의 마음도 뛰게 합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하기 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와. 진짜 내가 입을 너무 벌리고 다녔나?' '아닌가. 여기 담배가 타르가 세서 그런가.' 하는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수영장이나 바다. 계곡에서 몸을 가슴팍까지 담근 채 숨쉰 적이 있나요? 다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쿠스코에 내려서 걸어오는 지금까지. 계속 그런 느낌으로 숨이 쉬어집니다. 몸이 물속에 있고 고개만 내놓은 느낌. 숨이 가슴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느낌. 알고보니 고산지대에 위치한 도시라 그랬습니다. 리셉션에서 체크인하며 간단하게 물어보았습니다.
"나 숨 쉬는게 어려워. 혹시 왜 이런지 알까? 열은 나지 않아."
- here is cusco! very high moutain!
하고 병아리를 보듯 크게 웃어줍니다. 몸이 적응할 때까지는 숨이 가쁘게 쉬어진다고 하네요. 지금은 웃어넘기지만 당시에는 무서웠습니다. 희재의 몸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여기가 고산지대임을 보여줍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나갈 요량으로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가방 하나를 챙기고 문밖을 나서는데 어떤 잘생긴 한인 남자분이 말을 걸었습니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혼자 여행중이신가요?"
-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내일 비니쿤카 갈건데 같이 가실래요? 저희 지금 한 5명 정도 있어요. 저희는 다차서 인원은 안모아도 되는데 혼자 가시기에는 조금 그러실 것 같아서 반가워서 말 걸었어요!"
- 와.. 진짜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비니쿤카가 뭔지 모름)
"ㅋㅋ 그 아르마스 광장에 이 여행사로 가셔서 예약해주세요! 저희 이름 있으니까 같이 간다고 이야기하시면 될거에요."
- 감사합니다! 예약하고 이따 뵐게요!
"네. 저희는 옆방에 있으니까 편하게 오세요. 이따 저녁도 같이 드시려면 말씀해주세요!"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솔직히 남미를 혼자. 첫 해외여행으로 오다보니 과도하게 긴장을 하며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크게 하지 않았고, 모르는 외국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따뜻한 호의는 희재의 마음을 녹여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니쿤카가 뭔지도 모르고, 단체로 투어를 가는 시스템도 몰랐지만 '우선 같이 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어버립니다. 투어 예약을 위해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투어사에 도착해서 다음 날 비니쿤카 예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마추픽추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약해버릴까 싶었지만 저는 이미 쿠스코의 풍광에 반해버려 서두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만난 형님 누나들이 마추픽추를 예약했다면 같이 따라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비니쿤카 원정대에 이름을 올리고, 근처에 있는 산 페드로 시장(Mercado central de san pedro)도 구경하러 갔습니다. 지금과는 체력이 사뭇 달랐음이 글을 쓰면서도 느껴집니다. 시장은 활기차고, 저렴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도시에 가면 시장 구경을 즐겨하는 희재에게는 눈이 핑핑 돌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여기서 정말 많은 신세를 지게 됩니다.
폭풍같은 쿠스코에서의 첫 날을 보내고 쿠스코에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맨날 예쁘다는 말만 해서 지겨울 수도 있지만 정말 아름답습니다. 해가 지고 있는 그 모습마저도 아름답습니다.
숙소에서 아까 만난 형님 일행분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결정해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인티라이미 기간이라 어떤 가수가 특별 공연을 하는 것 같았는데 누군지를 몰라 잠깐 끼어들어 공연 구경하다가 나왔습니다.
다들 광장에서 만나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안티쿠초(소 심장 꼬치), 곱창 등등 쿠스코에서 먹을 수 있는 페루 전통음식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어떤 형님이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꾸이 먹어볼까요? 다들 안 먹어봤죠?"
꾸이? 꾸이라고 함은 편의점에서 파는 얇은 쥐포같은 것 밖에 모르던 귀여운 희재는 그게 무엇이든 좋다고 가자고 했습니다. 일행분들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꾸이..' 하고 제안한 형님을 따라갔습니다. 희재도 물론이구요.
식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형님들은 알고보니 마추픽추는 이미 다녀오셨고, 쿠스코를 떠나려다가 도시의 풍광이 아쉬워 비니쿤카도 보고 떠나려고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쉽지만 막연하게 '같이 갈 일행들이 또 있겠지.' 하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심약자분들은 스크롤을 각오하고 내려주세요
저는 음식에 대한 편견이 적습니다. 모든 음식들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녹아있다고 생각하기에 일반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단단히 생각하고 다니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첫 비주얼을 보았을 때는 살짝 놀랐습니다. 이게 그 귀여운 기니피그를 구운 음식이라니. 뒤늦게 찾아보니 안데스산맥 지역에서 스페인이 점령하기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있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소고기의 일반화 이전, 척박한 땅에서 매우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신분이 높은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이 요리를 꾸이라고 부르는건 아니고 기니피그를 '꾸이'라고 부르는데 이걸 구운 요리도 그냥 꾸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맛을 정확하게 비유하자면 기름이 많은 로스트치킨 껍질 부위 같았습니다. 살코기가 적고 껍질이 바삭한데, 향신료를 넣어서 구운 듯 다양한 향이 났습니다. 적은 살코기 부위는 닭고기보다는 텍스쳐가 부드러운데, 소고기보다는 뻑뻑합니다. 의외로 맛있어서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맛있고 조금 놀라운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숙소 앞으로 투어 차량이 픽업을 오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날 42시간 버스를 타고 도시에 도착해서 온갖 구경을 다하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고산지대 등산을 하러간다니 이 때의 체력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 선택들이 희재가 쿠스코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다음 편은 비니쿤카 이야기부터 올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와서 글쓰는 것도 즐겁습니다.
'여행기 > 남미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미 여행기 7. 쿠스코 - 무지개 산 비니쿤카(vinicunca) (12) | 2024.09.23 |
---|---|
남미 여행기 5.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 2박 3일 (2) (2) | 2023.02.04 |
남미 여행기 4.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 2박 3일 (1) (1) | 2023.02.01 |
남미 여행기 3. 리마에서의 날들. 카지노 체험기, 페루 유심, 한인 숙소 포비네 (0) | 2023.01.07 |
남미 여행기 2. 한국에서 페루 리마. 내 수하물 어디갔어? (0) | 2023.0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