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다녀온 남미 배낭 여행을 사진과 함께 기록해볼까 합니다. 코로나 이전이고,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혼자 남미 배낭 여행을 계획하시거나, 남미에서 정보가 필요하실 때 가볍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 '이것은 꼭 주의해야한다.' 같은 요소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만약 혼자 배낭여행은 가고 싶지만 어디 갈지 계획하지 못하신 분들은 읽지 마셔요. 남미로 떠나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ㅋㅋ
리마의 날씨는 런던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항상 우중충한 느낌의 날씨. 부슬비도 자주 긋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귀국을 위해 다시 리마로 돌아왔을 때, 게스트하우스의 키퍼가 해가 떴다며 좋아하던 기억이 나네요. 또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배낭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흡연구역으로 나와 담배를 피며 올려다본 리마의 하늘이 기억납니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그 우중충한 하늘.
말 그대로 지구 정반대편에 맨몸의 희재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갈아입을 옷, 외투, 세면도구 등 아무것도 없는채로. 우선 멍하니 있을 수는 없어 공항을 잠깐 둘러보고, 간단하게 택시비를 환전한 후 남미 여행 중 유일한 한인 숙소였던 리마의 한인 민박 '포비네' 사장님과의 카톡을 꺼내보았습니다.
'일단 숙소로 가야지.'하는 마음에 숙소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리마 공항의 택시에 대해 워낙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불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다들 신신당부하시며 하시는 말씀이 '꼭 택시는 공항 안의 택시를 타야한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공항의 택시를 잡아 지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걱정과는 다르게 기사님은 매우 친절했고, 영어가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설명해주려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오른쪽에 보이는 바다는 사람들이 서핑을 많이 하는 바다이다. 당신도 나중에 나와서 해보는 것도 좋을거야."와 같이 친절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린택시를 이용했습니다. 기사님께 "그린택시와 공항 밖 택시는 차이가 큰가요?"라고 물으니 기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저들은 택시라고 부를 수 없어. 그냥 차 끌고 나와서 사람들 태우고 돈 받는거야. 허가를 받은 사람들이 아니야."
리마 공항에서 포비네 한인 게스트하우스가 있던 바랑코 지역까지는 차로 약 30분정도 소요되었습니다. 택시비는 45솔을 주었는데, 적절하게 타고 온 가격이었습니다. (1sol = 300원. 약 15000원) 그 곳에 계시던 한인 형님(게스트 하우스 관리하는 한국인분이셨습니다.)과 정말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씻지도 먹지도 않고 곧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한인 형님께서는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걱정을 하셨는데.. 그 때의 저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나봐요.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방을 배정 받고 3분만에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내리 17시간을 잤습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가 15시쯤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7시였습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배드버그를 막기 위해 침대에 깔아둔 비닐이 바스락거리던 그 때의 소리.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잠에서 깨는데 몽롱한 잠기운은 점점 밀려나가고 '아. 나는 지금 페루에 있지.' '내 짐이 아직 안왔구나.' 하는 현실의 생각들이 점점 찾아오는. 그 날 아침이 기억납니다. 침대를 벗어나 숙소 밖을 나서보니 여전히 날씨는 흐릿했습니다. 제가 남미에 들어갔을 시기(6월)은 페루의 초겨울이라 흐릿하고, 쌀쌀하며, 가끔 안개비가 긋는 날씨였습니다.
처음에는 리마의 날씨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항상 우중충해서 '이런 곳에 살면 우울증 걸리겠는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있어보니 우중충이라는 표현보다는 '운치가 있다' 라는 표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남미 전역은 스페인의 점령을 받았기에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 건축 양식 또한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리마는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식의 건물 사이에 얼핏얼핏 보이는 스페인의 건축 양식과 다른 나라에 와있다는 이질감, 바랑코 지역의 아름다움이 산책의 재미를 돋우었습니다.
다녀온 후에야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당일 아침의 희재는 모든 것이 낯설어 살짝 위축되었습니다. 씻지도 않은 채로 숙소를 나서 근처에 있는 로컬 마트에서 간단한 식재료와 샴푸, 치약 정도를 사왔습니다.
다음 날. 공항 직원이 이야기했던 48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공항에서는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원래 계획이랄게 없는 일정이었기에 '맘 편히 리마나 둘러보자.'라는 생각으로 시내 구경을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무려 로컬 버스를 타고 말입니다. 목적은 두 가지. 꽃보다 청춘에 나온 라루차 샌드위치 가게 구경이랑, 페루 유심 사기였습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고, 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있었기에 버스에서는 핸드폰을 꺼낼 생각도 못했습니다. ㅠㅠ
남미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사람이 많은 대도시일수록 치안이 불안합니다. 역설적이죠? 그리고 리마도 페루의 수도이기는 하지만, 여행객들이 출입을 지양해야할 곳이 있습니다. (구 도심이라든지, 서핑하는 바닷가 근처라든지..) 미라플로레스 광장은 비교적 안전합니다. 버스로 다녀왔다는 자신감에 이 때부터는 여행이 재미있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리마 도심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행복한 기분으로 잠에 들고, 다음 날 부터는 리마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김희재다!" 하며 말입니다.
정확히 도착하고 4일 후. 짐이 왔습니다.
검은색 밴이 저녁 8시쯤 숙소 앞으로 도착했습니다. airport 어쩌고 저쩌고 적혀 있었는데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들이 지금 뒷좌석에서 비닐로 꽁꽁 동여맨 카키색 배낭을 꺼내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습니다. 입도 차마 다 벌리지 못한채 '아으..아' 와 같은 소리를 내며 마주했습니다. '눈물이 찔끔 난다' 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정말로 반가워 콧잔등이 시큰한 채로 가방을 비닐도 벗기지 않은 채 오래오래 쓰다듬었습니다. 비닐을 풀 엄두조차 내지 못했네요.
당시 포비네 하우스를 관리하던 게스트하우스 형님은 말 그대로 춤을 추셨습니다. 당시 포비네 하우스에는 저, 게스트하우스 관리 형님, 24살의 리마에서만 9개월 체류하던 동생. 이렇게 셋이 있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남미 투어 상품을 운영하고 있으셔서 투어 관광객들과 동행하신지라 숙소에 없으신 상태. 세 명에서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오늘만큼 기쁜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 '오늘을 기억하자.' 라는 이야기가 오갔고, 이내 카지노로 향했습니다.
카지노에서 100sol(30,000원)으로 시작해 350sol까지 땄습니다. 물론 이 돈은 이날 밤의 술값으로 전부 썼습니다. 카지노 내부는 매우 화려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가보는 카지노였는데, 룰렛의 빨간색 검은색 맞추기(종목 이름을 모르겠네요.)로 전부 땄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여기 체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일행들이 전부 털렸다며 툴툴대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 사나이 김희재. 페루의 거부가 되었을지도?
정말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짐도 도착했고, 리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았습니다.
포비네 하우스는 부대시설은 그럭저럭. 이라는 느낌이었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숙소 앞 야경이었습니다. 야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은 다양한 갈래로 분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교하게 깎인 조각상을 볼 때 느끼는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있겠고, 귀여운 것을 볼 때 느끼는 보호하고 싶은 아름다움. 자연을 마주할 때 느끼는 우아한 아름다움,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이를 볼 때 느껴지는 숭고한 아름다움 등등.
포비네 하우스 앞의 야경은 맥주 한 병을 들고 앉아 멍하니 2시간동안 볼 수 있게 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수사법이 부족하지만 이 말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여기는 리마 관광 코스에 포함시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숙소 앞 야경을 보며 맥주를 홀짝이다가, 와이파이가 겨우 잡히고 야경도 보이는 자리에 앉아 검색을 해보니 사람들이 리마에서 가장 많이 향하는 곳이 와카치나였습니다. 사막. 그리고 오아시스 마을. 모래를 가로지르는 버기카. 낭만이 가득하기에 바로 떠나야겠다 마음을 먹고, 버스를 결제한 후. 마지막 스테이크를 해먹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바로 이카로 출발했습니다. 다음 여정은 리마 - 이카로 간 후 이카에서 다시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새벽이라 귀여운 얼굴이 좀 부었네요. Javier Prado 터미널에서 탑승하셔야합니다. 버스는 크루즈 델 수르를 이용했습니다. 하단에 버스 예약할 때 주의점을 달아두겠습니다.
https://www.cruzdelsur.com.pe/
크루즈 델 수르 버스 예약하는 사이트입니다. 리마에서 예약하실 때 주의점 달아두겠습니다.
- 터미널은 Javier Prado 터미널입니다. plaza norte 터미널도 있고, 이외의 터미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해당 터미널이 이카로 가는 버스편이 가장 많습니다. 구글맵 다룰 때, 우버 부를때, 티켓 예약할 때 주의해주세요. 다른 터미널로 가서 기다리다가 버스를 놓친 분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 어지간하면 크루즈 델 수르를 이용하시는게 좋습니다. 가장 안락하고, 편안하며, 가격은 다른 버스들에 비해 조금 비싸지만 다른 버스를 이용했다가 기괴한 일들을 당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버스 강도, 매우 늦은 연착, 승차감, 차내 흡연하는 승객들 등등..)
많은 남미 여행객들이 리마는 당일치기, 혹은 아예 돌아보지 않고 바로 다음 일정으로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수하물이 도착하지 않은 기괴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바로 떠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리마에서의 날들을 보내고 난 후의 감상은, 수하물이 희재에게 어떠한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놓고 편하게 리마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지 않나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리마도 아름답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좀 많이 좋았습니다. 볼거리도 풍부하고 먹을 것도 풍부하니, 이틀 정도는 머무르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주 좋아요.
다음 편은 이카 - 와카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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