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다녀온 남미 배낭 여행을 사진과 함께 기록해볼까 합니다. 코로나 이전이고,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혼자 남미 배낭 여행을 계획하시거나, 남미에서 정보가 필요하실 때 가볍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 '이것은 꼭 주의해야한다.' 같은 요소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만약 혼자 배낭여행은 가고 싶지만 어디 갈지 계획하지 못하신 분들은 읽지 마셔요. 남미로 떠나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ㅋㅋ
국토종주를 다녀온 후, 병원을 다니며 발을 치료받던 시기였습니다. 주위 지인들에게는 "나 남미로 떠날거야!"하고 호언장담하며 다녔는데 막상 떠날 시기를 잡지 못하고 고민하던 때로 기억합니다. 마추픽추를 내 맨눈으로 직접 보고싶다는 소망도 있었지만 시차가 말 그대로 24시간인 지구 정반대로 혼자 간다는게 고민도 많이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충동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짐을 꾸렸습니다.
엄마는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해병대를 간다고 했다가, 국토종주를 다녀온다고 했다가, 이제는 남미 대륙에 혼자 간다고 하니 잠잠할 날이 잘 없었겠네요. 참 감사한건 크게 내색을 하지 않으셔서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6월 12일. 인천공항에서 출국했습니다.
남미까지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경유를 해야 했는데, 저는 경유 2번 후에 리마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영국 히드로 공항 -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 - 페루 리마) 총 비행 시간은 편도 34시간 가까이 되었습니다.
히드로 공항은 환승게이트안에 흡연구역이 없습니다. 물어물어 보안검색대를 다시 나가서 흡연구역을 찾았습니다. 한번도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으니 환승게이트에 있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가 여기서 움직여도 되는지 얼떨떨하던 기억이 나네요. 영어를 능숙하게는 못해도 표지를 읽을 수 있음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비행기도 거의 처음이거니와 장거리 비행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어 담배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Heathrow welcomes smokers' 의 문구를 찍고 있으니 중년의 남성분이 뚜렷한 영국 악센트로 살짝 웃으며 말합니다. 'welcome mate!'
히드로에서 상파울루, 상파울루에서 리마는 라탐항공을 이용했습니다. 남미 전역에서 유명한 항공사인데, 승무원들도 라탐항공에서 일한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져 기분 좋았습니다. 출발 전 해외 항공사 직원들의 불친절에 대해 너무 들어서일까요? 외려 저는 생각보다 친절하게 느껴져 좋았습니다.
상파울루 공항은 지금 생각하면 이제는 친숙함까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와이파이가 왜 이리 느려?' '뭐가 이렇게 공항에 많이 없지? 공항 맞는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남미에서 깨닫게 됩니다. 상파울루 공항은 차라리 천국이라는 것을. 21세기에 와이파이도 없는 공항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허허
34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리마에 도착했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아 살짝 춤을 추며 걸어나왔습니다. 저는 비행기에서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체질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고 나서야 알았고, 182에 85kg정도 되는 제 몸집에 이코노미 석은 너무 비좁았습니다. 그리하여 거의 뜬눈으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새며 왔지만 드디어 도착이라는 생각에 너무도 신이 나게 걸어나왔네요. '빨리 숙소로 가서 이틀은 몰아서 자야겠다.' 하고 수하물이 나오는 곳에 서있었습니다.
수많은 캐리어들이 지나가고 당연히 눈에 띄어야할 제 작은 배낭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까 보았던 공룡 스티커가 붙은 캐리어가 한 번 더 돌아 나와도 제 가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가고 저를 제외한 한 사람만 남았을 때야 깨달았습니다. '내 가방 어디갔지?'
그야말로 패닉이었습니다. 잠은 거의 자지 못했고 해외 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캐리어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라서 기본적인 속옷, 갈아입을 옷, 세면도구, 화장품 같은 것들. 그야말로 제 모든 것이 가방 안에 있었거든요. 정신을 차리고보니 지구 정 반대편에 멍하니 서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채로.
지금도 감사한 것은 그 때 귀국하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저랑 같은 처지의 여행객 한 명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여성분이었는데, 같이 수하물 관리센터로 가서 물었습니다. 둘 다 스페인어를 못하고 영어만 할 줄 알았는데 공항 직원은 나른한 성격에 느긋해보이고, 영어를 잘 못하는 환상의 콜라보였네요.
40분 정도를 대기하여 겨우 알아낸 제 가방의 위치는 '알 수 없음.' 지금 생각하면 공항측에서는 잘못이 없지만 이성을 잃고 '그게 가능한 일이냐.' 라고 격분하여 따지니 그제야 수하물 관리센터 직원이 정신이 바짝 들었는지 더듬더듬 말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추적된 수하물의 위치는 상파울루 공항에 들어온 것은 확인이 된다. 그러나 상파울루에 수하물이 있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만약 상파울루에 있다면 48시간 내로 니가 있는 숙소까지 공항에서 배달해줄 수 있다. 상파울루에 수하물이 없다면. 추후에 연락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지구 정 반대편에 여권이랑 지갑만 가진 채로 첫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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